예전의 나는
아빠를 무뚝뚝하고, 말 없고,
표현이 아주 서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특히 사춘기 때는 더더욱 그랬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고,
“나한테 뭐 해 준 게 있냐”라는 생각을 품고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억지스러운 서운함을 쌓아 올리며 지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떠한 것도 부족하지 않았고
충분히 보호받고 있었는데도
그때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
그러다 어느 날,
아빠와 단둘이 앉아 막걸리를 한잔 하며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아빠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아빠를 ‘부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게 되었다.
⸻
아빠는 큰아빠와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막내였다.
그 시절에는
집안의 전권이 큰아빠에게 있었고
아빠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열일곱에 공장으로 돈을 벌러 나가야 했다.
있을 곳이 없어
고모네 신혼 집에 얹혀 지내며 눈치 보던 생활.
열일곱이면
아직 철이 없어도 한참 철없을 나이인데,
아빠는 그 나이에
이미 어른이 되어 밥벌이를 하고
모든 걸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는 삶을 짊어져야만 했다.
⸻
그 이야기를 말하면서도
아빠는 끝까지 담담했다.
힘들었다거나, 억울했다거나,
서러웠다는 말은 단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표정 또한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게 더 이상했고, 더 아팠다.
마치
그 모든 시간을
이미 오래전에 혼자 추억의 페이지로
넘겨 버린 사람처럼,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스스로 삼키고 살아온 사람처럼,
그렇게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
자취방에서 지내던 시절,
할머니가 아빠 얼굴을 보러
깡시골에서 서울까지
여러 반찬들을 싸들고 먼 길을 올라오셨다고 했다.
작은 방에서 함께 자던 어느 날,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났다.
아빠는 중환자실로 실려 갔고
할머니는 그날 돌아가셨다.
⸻
그 이야기 또한
아빠는 똑같이 담담하게 말했다.
눈물이 고이거나
울거나 하지도 않았고,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며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엉엉 울지도 못하고,
그저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빠가 너무 담담해서.
그 담담함이 차가워 보였던 게 아니라
울어도 되는 순간에도
울 수 없었던 사람이구나…
그 어린 나이에 기댈 곳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울어야하는지도 몰랐겠구나…
그렇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장 아팠다.
⸻
그날 나는 알았다.
아빠의 무뚝뚝함은
차가움이 아니라,
아픔을 오래 참고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었다는 걸.
기댈 곳이 없던 시간 속에서
감정을 말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이
결국 성격이 되어버린 사람이었다는 걸.
⸻
그걸 이해하고 나니까
답답하게만 보였던 모습들도
그냥,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아빠를 사랑하게 되었다.
⸻
우리는 여전히
“사랑해”라는 말을 절대 주고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아빠의 사랑은
눈빛에 있고,
말끝에 있고,
어색한 걱정 속에 있다.
“뭐라도 도와줘야 하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몰라서 어쩌냐…”
그 말 한마디에서
나는
열렬히 사랑한다는 말이 함께 들리는 듯 했다.
⸻

어릴 때 느꼈던 결핍도
이제는 다 채워졌다.
아빠는 성실한 사람이고
끝까지 버틴 사람이며
자기 방식으로
사랑을 지켜 온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을
이제는 이해하고,
존중하고,
그리고 사랑한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조금 늦게
서로에게 도착한 부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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