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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Notes

아빠를 이해하게 된 날 — 그날 이후로 나는 아빠를 사랑하게 되었다.

by By Sophie 2025.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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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나는
아빠를 무뚝뚝하고, 말 없고,
표현이 아주 서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특히 사춘기 때는 더더욱 그랬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고,
“나한테 뭐 해 준 게 있냐”라는 생각을 품고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억지스러운 서운함을 쌓아 올리며 지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떠한 것도 부족하지 않았고
충분히 보호받고 있었는데도

그때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빠와 단둘이 앉아 막걸리를 한잔 하며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아빠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아빠를 ‘부모’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게 되었다.



아빠는 큰아빠와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막내였다.

그 시절에는
집안의 전권이 큰아빠에게 있었고

아빠는 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열일곱에 공장으로 돈을 벌러 나가야 했다.

있을 곳이 없어
고모네 신혼 집에 얹혀 지내며 눈치 보던 생활.

열일곱이면
아직 철이 없어도 한참 철없을 나이인데,

아빠는 그 나이에
이미 어른이 되어 밥벌이를 하고
모든 걸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는 삶을 짊어져야만 했다.



그 이야기를 말하면서도
아빠는 끝까지 담담했다.

힘들었다거나, 억울했다거나,
서러웠다는 말은 단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표정 또한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게 더 이상했고, 더 아팠다.

마치

그 모든 시간을
이미 오래전에 혼자 추억의 페이지로
넘겨 버린 사람처럼,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스스로 삼키고 살아온 사람처럼,

그렇게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취방에서 지내던 시절,
할머니가 아빠 얼굴을 보러
깡시골에서 서울까지
여러 반찬들을 싸들고 먼 길을 올라오셨다고 했다.

작은 방에서 함께 자던 어느 날,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났다.

아빠는 중환자실로 실려 갔고
할머니는 그날 돌아가셨다.



그 이야기 또한
아빠는 똑같이 담담하게 말했다.

눈물이 고이거나
울거나 하지도 않았고,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며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엉엉 울지도 못하고,
그저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빠가 너무 담담해서.

그 담담함이 차가워 보였던 게 아니라

울어도 되는 순간에도
울 수 없었던 사람이구나…
그 어린 나이에 기댈 곳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울어야하는지도 몰랐겠구나…

그렇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게 가장 아팠다.



그날 나는 알았다.

아빠의 무뚝뚝함은
차가움이 아니라,

아픔을 오래 참고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었다는 걸.

기댈 곳이 없던 시간 속에서
감정을 말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이
결국 성격이 되어버린 사람이었다는 걸.



그걸 이해하고 나니까

답답하게만 보였던 모습들도
그냥,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아빠를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해”라는 말을 절대 주고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아빠의 사랑은

눈빛에 있고,
말끝에 있고,
어색한 걱정 속에 있다.

“뭐라도 도와줘야 하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몰라서 어쩌냐…”

그 말 한마디에서

나는
열렬히 사랑한다는 말이 함께 들리는 듯 했다.


어릴 때 느꼈던 결핍도
이제는 다 채워졌다.

아빠는 성실한 사람이고
끝까지 버틴 사람이며

자기 방식으로
사랑을 지켜 온 사람이다.

나는 그 사람을

이제는 이해하고,
존중하고,
그리고 사랑한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조금 늦게
서로에게 도착한 부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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